제천문화원(원장 이해권)은 매년 제천의병의 묘 벌초 및 봉분 사초작업 등 의병사업을 전개하고 있다.
올해는 봉양읍 공전리 소재 ‘습재 이소응(李昭應,1852~1930)’선생 묘소를 선정해 성역화사업을 최근에 마쳤다.
이소응 선생은 춘천 출신으로 춘천 관계자들이 참배하며 관심을 보여 왔다.
그러나 이소응 선생의 묘소는 관리를 제대로 하지 않아 봉분이 허물어지고 잔디는 망실되어 의병대장의 묘소라기에는 너무 초라했다.
끊임없는 관심과 지원에 나선 제천문화원은 이소응 선생 묘소를 이번에 새단장하고 성역화하는데 크게 일조했다.
후손인 이영식씨는 “제천시와 문화원의 지원에 힘입어 문중 회의를 거친 끝에 습재와 아들 이배인 할아버지의 묘까지 함께 성역화 하였으며, 이 일을 진행하며 형제가 화합하는 계기가 되었다”고 감사의 뜻을 전했다.
이해권 제천문화원장은 “자양영당을 건립 수호하는데 습재 선생 집안의 노력이 아주 컸던 만큼 의병의 도시임을 내세우는 제천에서 선생의 묘를 먼저 성역화 한 것은 매우 바람직한 일이다”며 뿌듯해 했다.
그러면서 이 문화원장은 “앞으로 의병묘소 성역화에 최선을 다하겠다며, 많은 분들의 관심과 성원을 바란다”고 덧붙였다.
한편, 본관이 전주인 이소응 선생은 제천의병 관련 공이 컸던 인물로 유학에 조예가 깊고, 고상한 언행으로 일반의 추앙을 받았다.
이소응 선생은 1895년 을미년에 명성황후가 시해되고, 단발령이 내려지자 그해 12월 춘천에서 유중락, 이만응 등에 의해 의병대장으로 추대됐다.
이소응 의병대장은 전국 8도에 격문을 보내어 인심을 격동시키며, 여러 의병장들과 함께 거사하여 적을 토벌했다.
그는 경기도 가평에서 관군과 싸우던 중 폭우로 화승총을 쓰지 못해 싸움에서 패전했으나 제천의병에 다시 합류해 충주ㆍ제천 전투에서 큰 공을 세웠다.
또한 이소응 선생은 공전리 장담마을의 자양영당(紫陽影堂)을 1907년 9월에 완공했으며, 같은해 아들 이배인을 이강년 의병진에 합류시켜 의병활동을 벌이기도 했다.
이로써 아들 이배인, 손자 이초용, 종형 이진응, 아우 이경응(의병대장) 등 3대에 걸쳐 모두 5명의 의병을 배출했다.
정부는 이소응 선생의 이같은 공을 기려 1962년 대한민국 건국훈장 독립장을 추서했다.
/김상서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