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교조 “현대판 분서갱유…학교는 침묵 동조”
노벨문학상 수상자 한강의 대표작인 ‘채식주의자’를 놓고 교육계가 들썩이고 있다. 보수 단체에서는 이를 성교육 유해도서라고 비난하는 한편 진보 단체에서는 비상식적인 대응이라며 반박했다.
교육계에 따르면 보수 성향인 전국학부모단체연합(전학연)은 채식주의자를 “청소년 유해물”이라고 주장했다. 초·중·고 도서관과 공공도서관의 아동 및 청소년 서가 비치를 막기 위한 서명 운동을 진행 중이다. 전학연은 “(한강 작가의) 대표작 중 하나인 ‘채식주의자’에서는 형부가 처제의 나체에 그림을 그리고 촬영하며, 성행위 하는 장면을 적나라하게 묘사한다”라며 “게다가 처제는 갑자기 채식을 한다며 자해하다가 정신병원에 입원해서 물구나무서기를 하면서 나무가 되겠다고 굶어 죽는 기이한 내용으로 이어진다”라고 전제했다. 이어 “이런 극단적이고 폭력적인 내용의 책을 노벨상 작가의 작품이라는 이유만으로 전국의 초·중·고등학교 도서관에 비치하려는 시도에 학부모는 경악을 금치 못하고 있다”고 주장했다.
전학연은 “청소년 보호법 제9조 제1항에 의하면 청소년유해매체물 심의 기준에는 ‘청소년에게 성적인 욕구를 자극하는 선정적인 것이거나 음란한 것’이 포함되어 있고 ‘이에 해당하면 청소년유해매체물로 결정하여야 한다’라고 명시되어 있다”라며 “누가 보아도 청소년유해매체물인 내용의 책을 노벨상 작가의 작품이라는 이유만으로 아직 미성년인 초·중·고등학생들에게 권장하는 것이 말이 되는지 묻고 싶다”고 밝혔다. 또 “정근식 서울시교육감은 후보 시절인 지난 13일 논평을 통해 ‘조전혁 후보가 서울시교육감이 된다면 한강 작가의 채식주의자 등이 학교도서관에서 사라질 것’이라며 본인이 교육감이 돼야 한다고 강조한 바 있다”라며 “이에 정 교육감에게 공개적으로 질의를 한다. ‘채식주의자’를 끝까지 읽어보았는지, 그리고 자신의 미성년 손자·손녀가 있다면 과연 필독 도서로 추천하고 싶은지 공개적인 답변을 요구한다”고 했다.
실제 경기도교육청은 지난해 ‘청소년 유해 도서를 분리·제거해달라’는 내용의 보수 성향 학부모 단체 민원을 접수하고 같은 해 9월께 일선 교육지원청에 “부적절한 논란 내용이 포함된 도서에 대해 협의해 조치하라”의 공문을 두 차례 보낸 바 있다. 공문에는 청소년 유해매체물 심의 기준, 보수 성향 학부모 단체의 주장을 담은 보도가 함께 담긴 것으로 알려졌다.
반면 전국교직원노동조합(전교조)은 “일부 우익 단체들은 그동안 성교육·성평등 교육 도서 폐기를 요구하고 심지어 2022 개정 교육과정과 일부 교과서에 담긴 성평등 교육 관련 내용을 ‘성혁명 교육’이라 비방한, 정상 범주에서 한참 벗어난 혐오와 차별에 물든 비상식적인 주장을 펴고 있는 단체”라며 비판했다.
전교조는 “이들의 행태는 현대판 분서갱유와 다름없다”라며 “더욱 개탄스러운 것은 실제로 이들의 비상식적인 요구가 받아들여져 일부 교육청과 학교에서는 해당 공문을 눈치 보며 교과서 선정에 차질을 빚고 있다는 사실”이라고 했다. 이어 “이 단체들의 비상식적인 요구로 숱한 성평등 교육 도서가 폐기되어 왔으며, 그중에는 최근 아시아 여성 최초로 노벨문학상을 수상한 한강 작가의 작품도 포함되어 있었다”라며 “그리고 이러한 금서 조치가 가능했던 이유는 해당 단체들의 주장에 교육부와 교육청, 그리고 일부 학교 관리자들이 침묵으로 동조했기 때문”이라고 지적했다.
한 작가의 채식주의자는 최근 국회 국정감사에서도 도마 위에 올랐다. 임태희 경기도교육감은 지난 22일 국회에 출석해 해당 작품에 대해 “깊은 사고 속에서 쓰인 깊은 사고가 들어있는 작품”이라면서도 “다만, 책에 담긴 몽고반점 관련 등의 부분에서는 학생들이 보기에 저도 좀 민망할 정도의 그렇게 느끼면서 읽었다”고 말했다. 또 “교육적으로 학부모들이 걱정하는 부분이 이해가 간다”라며 “내 아이라면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읽으라고 권하고 싶다”고 했다. /최상귀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