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천지역 출신 이금석씨 서울 30년 헌책방 운영하다 낙향
“단양지역 유명 관광인프라 한순간에 잃어 아쉬움이 크다”
유명 영화 촬영지와 단양지역의 이색 관광코스로 전국으로부터 이름난 헌책방 ‘새한서점’이 화마에 잿더미가 돼 연말 단양지역사회가 우울해 했다.
단양군과 소방당국에 따르면 구랍 19일 밤 11시53분께 단양군 적성면 새한서점에 불이 나 소방서 추산 3400만 원의 재산피해를 내고 3시간여 만에 진화됐다. 이날 불은 363㎡ 건물과 내부에 있던 서적 7만여 권을 태웠다. 다행히 주인 이모(75)씨는 스스로 대피해 인명피해는 발생하지 않았다.
불이 나자 단양소방서는 소방차 9대와 소방 인력 30여 명을 현장에 투입해 진화작업을 했다. 큰불은 다음날인 20일 새벽 잡았다. 하지만 책더미 속에서 되살아나는 잔불 정리는 온종일 이어졌다. 진화작업과 중장비를 동원한 가건물 철거작업이 마무리되면서 산더미 같은 헌책이 눈과 손끝을 즐겁게 했던 새한서점은 이제 그 터만 남았다.
영화 ‘내부자들’을 촬영하면서 새한서점은 전국에 유명세를 떨쳤다. 적성면 현곡리에 자리해 숲속의 헌 책방으로 알려진 이 서점은 13만여 권의 중고 책과 함께 한적한 시골 풍경으로 눈이 오는 겨울에는 여행객들에게 빼놓을 수 없는 인기 있는 코스로 자리매김 했다. ‘동네앨범’ 등 각종 TV예능 프로그램에도 소개되면서 꾸준한 발걸음을 모았다. ‘베틀트립’을 통해 소개되기도 한 새한서점은 연극과 버스킹·스몰웨딩 등 다양한 이벤트를 방문객에게 선보이며 화마가 삼키기 전까지 큰 인기를 끌었다.
새한서점은 한 때 서울 시내에서 가장 큰 헌책방이었으나 소득 수준이 높아진 소비자들이 헌책을 외면하고 인터넷 서점의 폭발적인 증가로 자리를 내줄 수밖에 없었다. 주인 이금석(60)씨는 숲 속 새한서점을 열면서 ‘문화관광 서점’이라고 소개했다.
새한서점은 단양군 적성면 현곡리 마을에서 고개를 하나 넘어야 터를 잡은 숲이 겨우 눈에 들어온다. 제천 출신인 이 대표는 지난 1979년 헌책 노점상을 시작으로 서울 답십리와 길음동·고려대 앞 등지에서 30년 동안 헌책방을 운영했다. 책 좀 읽는다는 사람들 사이에서 새한서점은 꽤 유명한 편이었다.
이 대표는 자신의 고향인 제천시 송학면에 숲 속 서점을 차리려고 했으나 장소가 마땅치 않아 폐교된 단양 적성초교를 임대해 2002년 낙향했다. 서울에 있는 헌책을 옮겨오는 데만 6개월이 걸렸다. 그러나 폐교 임대료 부담 때문에 2009년 지금의 자리로 다시 이주해야 했다. 이 대표는 개점 당시 도심에 있던 서점을 숲 속으로 옮겨 온 이유와 관련, “새가 날고 계곡 물소리 들리는 산골에서 책과 함께 살고 싶었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이 대표는 “밤이면 너구리·고라니·멧돼지 등이 출몰하고 주변에 널린 텃밭에는 씨만 뿌려도 각종 푸성귀를 먹을 수 있으니 그야말로 귀거래사의 풍류가 아닌가”라고 반문했다.
단양지역 사람들도 찾아가기 어려운 숲 속 서점에서 장사가 되는지 물었다. “입에 풀칠하는 데는 문제가 없다”는 답변이 돌아왔다. 맨 흙바닥에 가건물로 지은 서고지만 인터넷을 통한 매출은 꾸준히 늘었다. “찾아오는 손님들은 고객이면서 좋은 대화 상대다”라며 “버스를 놓친 손님에게는 하룻밤 잠자리도 내 준다”라고 이 대표는 회고했다.
소방 당국은 화목 보일러에서 불이 시작된 것으로 보고 새한서점의 정확한 화재 원인을 조사하고 있다. 단양군 관계자는 “고령의 주인은 건강도 좋지 않았지만 헌책방에 달린 작은 집에서 생활을 하며 책을 관리했는데, 불이 나면서 핸드폰도 가지고 나오지 못했다더라”고 안타까워하면서 “당분간 자녀의 집에서 지내기로 한 것으로 안다”라고 말했다. 이어 “단양의 유명 관광인프라를 한순간에 잃어 아쉬움이 크다”라며 “새한서점의 ‘명성’을 기억하는 중장년층 단양 관광객들이 문의가 잇따르고 있다”라고 부연했다. /최경옥·지만석기자